행복중심생협 연합회

여성과 환경

0.4℃가 던지는 질문들

2021-08-05 15:12:14.0 arina0322

 

 

 기후 재난이 일상적인 뉴스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서유럽에서는 폭우로 200명 넘는 사람이 죽고, 또 그만큼이 실종되었다고 하더니, 다시 몇 일만에 중국 정저우에서 천년에 한 번 내릴 폭우로 홍수에 휩쓸린 도시의 사진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평균기온이 1.1℃ 높아진 지구의 모습입니다. 과학자들은 2℃까지 상승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으로 전망합니다. 2018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총회에서는 2100년까지 상승 폭을 1.5℃ 이내로 제한해야만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현재 속도대로라면 2030~50년 사이에 1.5℃를 초과할 것이라는 예측도 함께였습니다.


 먼 나라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오늘의 날씨에서 기후위기를 실감하는 나날입니다. 매일이 전례 없는 폭우 아니면 전례 없는 폭염입니다. 얼마 전 방문했던 영천농민회 친환경복숭아작목반 생산자님께서도 기후위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영천은 비가 적고 햇빛이 강해 복숭아가 좋기로 유명한 고장이었는데, 수확 철을 앞두고 계속 비가 쏟아지니 걱정이 크다고 하셨지요. 그럼에도 지구와 공존하는 농법을 포기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조합원들이 기꺼이 찾을 최고의 복숭아 맛도 포기하지 않으려 애쓰시는 마음이 전해져왔습니다.

 

 이제 0.4℃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막연히 한탄만 할 수는 없습니다. 2019년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장에서 그레타 툰베리는 말했습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불가능한 일을 해야 합니다. 포기는 절대 선택사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난이 일상이 되었으니, 재난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새롭게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 어떤 문제인지 공부하고, 좋은 답을 찾는 것을 여전히 포기하지 말아야겠지요. 


 행복중심생협도 할 수 있는 노력 중 하나로 젠더관점으로 기후위기를 살펴보는 특강을 기획했습니다.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젠더관점’은 같은 일이라도 보는 높이에 따라 달리 보이고, 어떤 위치에서는 볼 수 없는 사각지대도 존재한다는 것을 성찰하는 시각이지요. 기후위기는 ‘위기’이자 ‘재난’이고 위기와 재난을 통과하며 기존의 불평등이 심화된 경우는 많습니다. 좋은 답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기후위기 역시 젠더관점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겠습니다. 4회에 걸친 강의를 통해 조합원들과 함께 재난의 시대에도 놓쳐서는 안 될 질문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기후위기와 여성, 함께하는 내일] (행복중심생협연합회·중부여성발전센터 공동기획)
 

1강. 06/10(목) - <기후위기와 여성> 윤정숙(녹색연합 대표)
2강. 06/24(목) - <기후위기와 환경> 김신효정(여성학자)
3강. 07/08(목) - <기후위기와 여성의 일> 나지현(사무금융우분투재단 사무처장)
4강. 07/22(목) - <기후위기와 여성 행동> 장이정수(여성환경연대 이사)

 

※ 이하 문단 중 따옴표안의 인용은 해당 문단에서 소개하는 강의 강연자의 말입니다. 

 

 녹색연합 윤정숙 대표는 크레타 툰베리로 대표되는 10대 여성 액티비스트들, ‘금요일의 소방훈련(Fire Drill Fridays)'의 상징이 된 80대의 제인 폰다,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을 지향하는 한국의 MZ세대 여성들을 거론하며 기후위기를 알리고 대안을 만드는 가장 앞자리에 여성들의 얼굴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경제성장과 화석연료 중심의 주류경제에 속하지 않은 여성들이기에 할 수 있는 실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기에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취약집단이 10대와 여성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성농민들이 경제적 주도권을 가진 대규모 경작 위주의 생계부양 농업에서 소외된 소농의 위치에 있었기에 토종씨앗 지키기 활동을 해올 수 있었던 것과 겹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여성학자 김신효정은 강의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 기후위기를 우리는 얼마나 평등하게 살아내고 있나요?" 지난 25년간 인류가 배출한 탄소량을 분석한 결과 소득 상위 1%의 소수가 하위 50%에 해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2배에 달하는 탄소를 배출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또 소득 상위 10%가 전체 탄소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배출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스톡홀름 환경연구소, 2020) 하지만 더 적은 탄소를 배출한 사람들이 오히려 기후위기의 피해자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 폭우로 인한 이재민의 80%가 이주노동자였죠. 그들의 숙소가 대부분 농지 근처의 비닐하우스였기 때문입니다. 폭염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도 야외노동자, 주거 빈민입니다." 기후위기 이후의 세계를 꼬리칸과 일등칸이 나뉜 설국열차로 설계하지 않으려면 ‘기후 불평등’에 대한 인식, '기후정의'에 대한 추구가 꼭 필요합니다.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의 나지현 사무처장은 기후위기와 뗄 수 없는 코로나 19라는 재난 속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노동의 문제를 먼저 짚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실직과 임금삭감의 타격은 여성이 집중된 비정규직에 몰렸고, 가정 내 성별분업으로 여성에게 전가된 돌봄 노동의 하중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탄소중립경제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일자리 재편은 동반될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 과정을 ‘정의로운 전환’으로 만들기 위한 사회적 장치들이 필요합니다.


 "화석연료 기반 일자리가 줄어들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누고, 자동화가 되어도 인간의 손이 필요할 마지막 영역인 돌봄 노동도 지금처럼 평가절하 되지 않고, 존중받는 전문노동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전환에 필요한 교육 훈련이 가능하도록 그 기간 동안의 생계비를 화석연료기반 산업으로 이익을 본 기업들이 치르게 해야겠지요.”


 여성환경연대 장이정수 이사는 기후위기를 성장에서 탈성장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신호로 해석했습니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하면 더 싼 값에 노동자와 원료를 사서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지에 매진해왔습니다. 자연, 여성, 제3세계에 대한 착취로 지탱된 시스템이고, 그 자체로 기후위기를 초래한 원인입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저렴한 자연은 없고, 더 값싼 사람도 없어야 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환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에너지는 전환하고 자원은 순환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큰 틀은 결국 국가 정책입니다. 세계 8위 탄소 배출국의 구성원으로서 “탄소중립 선언을 한 다음 바로 신공항 건설을 발표하는 모순된 정부 정책”부터 바로 잡으려면, 내년 대선에서 대표자의 중요한 기준으로 기후정책을 요청하며 시민의 역할을 다해야겠지요. 더 쉽고 일상적인 대안도 있습니다. 매일 일어나는 기후행동인 소비를 바꿔나가는 것입니다. 


 “전 세계 교통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공장식 축산 육식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지구를 생각하는 농법으로 재배한 먹거리를 지지하는 소비를 해야 하고요. 패스트 패션에 더는 기여하지 말아야합니다. 아마 지금 옷장에 있는 옷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옷이 떨어질 일은 없지 않을까요? 또 잠깐 목 한번 축이자고 100년 동안 썩지 않는 플라스틱을 쓰고 버리는 건 더 이상은 안 될 일입니다.” 입고 먹고 쓰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더 검소하면서도 더 만족하며 살 것인지”를 질문하며 4회에 걸친 강의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위기는 거대하지만, 위기를 늦추는 실천은 사소합니다. 외출 때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잊지 않으려는 사소함, 자원 순환율을 높이기 위해 기꺼이 분리수거를 챙기는 사소함, 일주일에 하루는 채식을 실천하는 사소함. 여성들이 앞장서고 있는 모든 작은 실천들보다 화력발전소 하나를 중단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전환이 가능하려면, 먼저 사람들의 감수성이 움직여야 하고, 감수성은 일상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러니 일상을 바꾸는 사소한 매일을 보태는 것이 사실 가장 거대한 일입니다. 행복중심생협도 조합원들과 함께 사소해서 거대한 실천들을 계속 만들어 가겠습니다. 

 

박미숙  행복중심생협연합회 교육조직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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