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중심생협 연합회

여성과 환경

기후위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2021-01-14 14:44:51.0 arina0322

 

 사실 생협 조합원들은 한국사회 평균보다 기후나 에너지, 농업 문제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고 관련한 실천도 열심히 한다. 그리고 기후위기 관련 자료들도 제법 많이 만들어져서 공중파나 케이블 방송, 유투브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기후위기 자체에 대해 길게 설명하지 않고 그 심각성에 비해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정부정책을 점검하고 생협의 과제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초록빛을 잃은 ‘그린’뉴딜
 지금 중요한 건 이미 도래한 기후위기에 적응하고 대응할 과제들을 정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1.5도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지구평균온도 상승을 1.5℃로 막는다는 목표 하에 전 세계가 쓸 수 있는 탄소예산(carbon budget)은 420Gt 정도이다. 전 세계 인구에서 한국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따지면 한국이 쓸 수 있는 전체 탄소예산은 1.78Gt 정도로 얘기된다. 한 연구자의 계산에 따르면, 한국의 탄소예산은 올해로 소진될 전망이다. 즉 한국은 지구평균온도 상승을 1.5℃로 제한하는 전 세계적인 과제에서 자기 몫을 하는데 이미 실패했다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은 한국형 뉴딜을 추구한다며 여전히 경제성장형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밝힌 그린뉴딜 5대 대표 과제는 ①그린 스마트 스쿨, ②스마트 그린 산단, ③그린 리모델링, ④그린 에너지, ⑤그린 모빌리티이기 때문이다. 그린이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관한 대책은 없고 더 만들겠다는 계획만 있다. 탄소예산은 다 써버렸고 정부의 대책은 이 심각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재난은 언제나 불평등하다
 이 비슷한 상황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1997년의 국가부도위기 사태 때도 그랬다. 정부는 괜찮다며, 대책이 있다며 안심하라고 하다가 막상 위기가 시작되자 고통분담을 내세워 시민들을 희생시키고 기업들에게 막대한 공적 자금을 제공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그 결과가 지금의 심각한 사회양극화와 고용불안, 자산격차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외환의 흐름이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했듯이, 아직 잘 체감되지 않는 기후위기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불평등을 초래할 전망이다.

 

 모두 알다시피 재난은 모든 이에게 동일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리 정보를 구하거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 필요한 서비스를 화폐로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는 사람들은 위기의 영향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후위기의 경우 이 불평등의 결과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작환경이 바뀌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견딜 수 없는 열이나 추위에 노출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지 미리 예측할 수 없다.

 

 더구나 위기는 누군가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태양광이나 풍력발전같은 재생에너지는 좋은 에너지라 불리지만 대규모 시설로 들어설 경우 누군가의 터전을 빼앗고 자연을 파괴한다. 이미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들이 발생하고 있고, 탈핵은 선언만 되었을 뿐 핵발전소는 지금도 건설 중이고 그 수는 더 늘어날 예정이다. 코로나19 위기를 틈타 원격의료나 비대면진료, 규제혁신, 노동법 개악 등이 진행 중인 것도 재난이 누군가의 기회가 되고 있음을 뜻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이중성
 기우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의심이 생기는 이유는 한국이 석탄화력발전소와 재생에너지시설을 동시에 짓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이동을 가로막는 코로나19의 유행에도 제주 제2공항, 가덕도 신공항 등 대형 국제공항들을 계속 지으려 하는 나라, 탄소중립을 선언하고서도 각종 개발사업들을 추진하겠다는 나라이다. 탄소예산을 다 쓰고도 탄소중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정부가 나서지 않으니 우리라도 열심히 하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후위기는 우리‘만’ 열심히 해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기후위기는 막을 수 없다. 유럽의 탄소국경세(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에 부과되는 관세)나 전 세계의 흐름을 볼 때 기업은 일정정도 수출을 위해 온실가스 저감에 나서겠지만 문제는 정부이다. 한국경제의 틀을 잡아온 정부정책이 바로서야 하고, 이를 요구할 사회적인 힘이 필요하다.

 

 생협, 그리고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
 그런 점에서 생협운동은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당위적으로 말하면 생협운동은 한편으로 정부정책을 변화시킬 사회적인 힘을 조직하고 다른 한편으로 생협사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경제를 실현할 힘을 축적해야 한다. 정부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은 생협만의 과제는 아니고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시민사회 전체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기후위기비상행동이라는 연대체가 꾸려져 있고, 다양한 개인과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중앙/지방정부들은 선언만 할 뿐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생협운동이 모든 부문을 감당할 수는 없고 사업과 밀접하게 연관된 부문에라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지난 20년 이상 한국의 농정(農政)이 사라졌다는 평가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기후위기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부문도 농업이고 고령화와 함께 농촌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이미 커졌다. 그렇다면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방법에 관한 구체적인 고민과 전략이 필요하다. 농업의 붕괴는 심각한 사회갈등과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정부정책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앙/지방정부 단위에서 푸드플랜과 로컬푸드사업, 농민수당, 농민기본소득이 초기 단계이지만 긍정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이런 경향을 반영한다. 농업의 공공성이 강화된다면, 먹거리의 공공성과 공공급식이 강조된다면,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위해 축산업을 비롯한 농업의 전환이 필요하다면, 협동조합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이런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시의 소비자와 농촌의 생산자를 연계하는 생협의 특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도시와 농촌의 균형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생산과 소비, 노동과 유통을 연계시켜 고민해야 지속가능한 소비가 가능하다. 그리고 생협도 하나의 물류사업으로서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물류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매장운영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등을 효과적으로 감소할 뿐 아니라 기업들에 요구되듯이 RE100(필요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한 코로나19 위기와 관련해 드러났듯이 앞으로 어떤 위기가 갑작스레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건 기본적인 신뢰관계이다.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피할 수 없다면 그 두려움을 쪼개어 감소시킬 필요가 있다. 생협의 같은 조합원이라는 사실은 신뢰 없는 사회에서 100분의 1 정도의 신뢰라도 형성할 수 있는 관계이다. 동모임이나 위원회 활동 등을 통해 조금 더 다져진 관계라면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할 수 있다. 갈수록 구매로만 집중되는 관계를 어떻게 신뢰로 이어나갈 것인지 조합원 활동에 관한 고민도 필요하다.

 

 기후위기는 미래세대가 아니라 현세대의 문제이다. 기후우울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관적인 평가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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