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중심생협 연합회

여성과 환경

Be the Eco-feminist : 에코페미니스트를 향한 여정

2020-12-02 15:41:27.0 arina0322

 

 

Be the Eco-feminist : 에코페미니스트를 향한 여정

 

「거기 서른 여덟해 된 병자가 있더라.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요한복음 5:5~8)」

 

 

 나는 ‘택배형인간’인가
 그렇게 38년을 살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고 독백 할 수 밖에 없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주문한다’. 매일같이 쌓이는 택배 상자와 뽁뽁이들을 생각없이 치우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평생 소비만 하며 살 것인가? 정말 필요해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허전하고 또 스트레스를 받을 때 습관적으로 쇼핑거리를 찾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소비형인간, 택배형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먹고, 입고, 누리는 것들이 어디서, 누가, 어떻게 만들어낸 것인지 비디오를 보듯이 다 보여도 똑같이 소비할 수 있을까? 15,000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며 잡는 물고기는 무슨 맛일까. 원주민에게서 빼앗은 숲을 모조리 베어내고 심은 농장에서 갓 따온 바나나, 젊은 생명을 삼켜버린 쇳물로 만들어낸 티비와 냉장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가 묻어있는 지하철. 그 모든게 눈에 보인다면 우리의 일상은 평안할까?


 “숲은 우리의 터전입니다. 흙은 어머니입니다. 숲과 땅을 훼손한 것은 (어머니의) 자궁을 파괴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제게 숲과 땅은 생명이고 영원입니다.” 파푸아 토착민의 말이다. 이들은 팜유 생산을 위해 한국기업에 의해 대대로 살아온 숲을 파괴당했다. 아마존 숲은 더 많은 소고기를 얻기 위한 거대기업과 부패한 정부에 의해 지금도 사라진다. 알루미늄 공장은 인도의 가난한 마을에 지어지지만 정작 그걸 재료로 만든 제품들은 북반구에 사는 부자들의 손에 쥐어진다. 아무것도 잃는 것 없이 돈으로 뭐든지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소비는 언제나 대가를 치러낸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땅과 눈물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개발이란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옮겨가는 진화과정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어서 부유한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는 양극화 과정이다.’¹ 그동안 속아왔든 모른척한 채 누려왔든 성장과 개발이라는 신화 속에서 우리 모두는 공범이 되었다. 끝없는 소비의 도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시골과 가난한 나라로 버려진다. 이 양극화에서 가장 먼저 생존을 위협당하는 존재는 바로 여성과 아이들이다.


 사람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의 인구성장이 환경과 자원고갈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이들의 인구가 아무리 급속하게 줄어든다 해도 부자나라 10개국의 소비수준을 5% 줄이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 소비를 줄인다는 것,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성장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反성장 이야기는 아직 너무 낯설다. 애초에 성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도 눈에 보이는 수치와 재화에 집중되어 있다. 거기에 참된 인간 삶에 대한 질문은 들어있지 않다.

 

 누구를 위한 성장일까
 더 많이 얻기 위해 땅에는 비료를, 작물에는 농약을 뿌려댔다. 산을 깎아 케이블카를 만들고 흙을 부어 바다를 메꿨다. 올림픽이라는 거창한 이름 때문에 집과 터를 잃고 쫓겨난 사람들부터 용산, 아현포차, 옥바라지, 노량진수산시장까지. 경제를 살린다는 공허한 구호 속에서 국가는 언제나 사람과 자연을 밟았고 또 그 과정을 묵인했다. 


 중세는 마녀사냥이라는 명목으로 여성들의 부를 빼앗고 권력의 밑바닥에 두었으며, 근대는 힘으로 빼앗은 식민지와 노예들 위에서 부를 축적했다. 그렇게 벌어진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세계화, 글로벌기업이라는 멋진 수식어를 내세워 더 교묘하고 철저하게 착취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먹고, 입고, 잠들고, 쇼핑하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씩 짚어보자. 거기에 사람과 자연을 착취하는 과정과 결과가 숨겨져 있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될까. 

 

 에코페미니즘이 바라는 것
 자본주의는 단순하고 힘이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돈’, 즉 경제적 가치로 환원시킨다. 집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육아와 같은 것은 공짜이고 따라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판매 가능한 제품의 원료가 되기 전까지 의미가 없다. 유럽이 원주민을 식민지화하고,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인간이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이렇게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맞닿아있다. 이 둘은 모두 식민지화, 착취, 욕망, 권력, 끝없는 소비를 위한 파괴를 연료로 삼는다. 


 그래서 에코페미니즘은 단순히 환경을 지키자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녹색성장, 녹색소비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생산과 소비의 패턴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연을 고쳐가자는 것은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에 눈감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착취와 차별처럼, 자연과 식민지를 향한 폭력은 경제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 없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분명 더 편하고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Max-Neef는 아홉가지 기본 욕구를 말한다. ‘생존, 보호, 애정, 지식, 참여, 여가, 창조, 정체성, 자유’. 이 욕구를 산업화된 시장 속에서 소비하며 충족하려 한다면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다. 화려한 광고와 마케팅에 현혹되어 대기업이 만들어낸 상품과 서비스에 의존해서 사는 것은 언제까지나 남의 손에 붙들려 연못에 들어가기만 기다리던 38년 된 병자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자본주의 생태계의 생산과 소비로 얽혀있는 현실 속에서 혼자 외딴 삶을 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과소비를 그만 두고 생태와 환경을 생각하는 삶을 사는 것, 스스로 자급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는 것. 무엇보다도 우리가 거대 자본의 노예가 아니라 주체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 일어나 걸어갈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에게는 연대와 협동이라는 유일한 대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협 : 에코페미니즘의 연못
 생협은 에코페미니즘의 정신이 현실 속 대안으로 발현되는 멋진 연못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협 안에서도 우리는 그저 소비에만 몰두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협이 자본주의적 관점은 그대로 둔 채 더 좋은 것을 먹기 위한 소비의 수단이라면 결국 그 역할은 더 큰 기업들이 멋지게 대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생협의 소비자는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꿈꾸어야 한다. 자연을 이윤으로 환원하며 노동자를 기계처럼 소모시키고 끊임없이 소비를 유혹하는 이들과 정반대의 길을 가야 한다. 그 길은 우리가 스스로 일어나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1960년대 일본의 여성들이 모여 기업의 독점을 벗어나 안전하고 값싼 우유를 공동구매하기 시작했다. 생태농업을 실행하는 축산농의 우유를 구입하면서 소비자들은 자본주의 농업구조의 위험을 깨달았다. 땅과 가축들에게 하는 일이 결국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협동을 시작했다. ‘우리는 주부들이 가정에서부터 행동을 함으로써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매와 소비를 통해서 일본 농업과 어업의 경영방식을 변화시키고자 합니다.’² 일본생활클럽 조합원들이 걸어가고자 하는 길이다. 


 생협의 소비자운동은 단지 친환경 먹거리를 소비하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결과물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거대 기업과 자본주의,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성장과 개발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공동구매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립하며 생산과 소비의 구조를 바꾼다. 개발이 아닌 생태와 지속성에 초점을 맞추고 나아가 사회 속에서 여성의 주체적인 목소리를 키우는 것, 약자와 소수자가 차별과 착취를 당하지 않게 하는 것. 일본생활클럽 뿐만 아니라 행복중심생협, 그리고 다른 모든 생협들이 함께 일어나 걸어가야 할 길이고 함께 가꾸어야 할 연못이다. 

 

 다시 ‘택배형인간’으로 돌아갈 것인가
 행복중심 조합원이 된지 6년이 되었다. 행복중심을 통해 협동조합을 배우고 우리가 사는 삶에는 더 나은 대안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바쁘게 살아왔던 시간, 그리고 내가 점점 택배형인간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의 사랑하는 딸과 함께 살아갈 세상은 어떤 세상이어야 할까. 


 천천히 그러나 길을 잃지 않고 우직하게 희망을 갖고 걸어가보려고 한다. 자급의 삶, 순환의 삶, 자본주의 생태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삶.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그러나 나 자신의 약함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격려와 도움을 받아간다면 해봄직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길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¹ 에코페미니즘 p.413, 반다나 시바, 마리아 미즈 저,  손덕수, 이난아 역, 창비

² 에코페미니즘 p.427, 반다나 시바, 마리아 미즈 저,  손덕수, 이난아 역,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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