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중심생협 연합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엄마와의 여행 : 꼭 껴안고 속삭이고픈 말들

2021-05-07 11:30:07.0 arina0322

 

 

 올해 엄마는 80살이 되었다. 남편따라 귀향하여 20년을 살고, 이제는 혼자가 되어 소소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떠들썩하지는 않아도 마을잔치를 벌여 공공연한 축하를 해드리고 싶었는데, 코로나로 무산되어 결국 조용한 곳으로 5월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엄마는 딸 다섯을 낳아 기르며, 내 딸들은 여자라고 무시받지 않게 기르겠다는 다짐을 종종하곤 했다. 아빠는 아들이 없다는 한탄을 70살이 되어서도 그치지 않았다. 딸을 낳고 흘린 엄마의 눈물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강물을 이루었을 것이다. 


 엄마의 소망은 딸들이 많이 배우고, 좋은데 시집가서 아들을 낳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 딸로 키우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었다. 바람대로 딸들은 학업을 마쳤고 모두 아들을 주렁주렁 나았다. 그러면 엄마의 인생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는데, 내심은 그렇지 않으신 듯하다. 떵떵거리고 자랑할만한 사위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더 문제는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 대한 평가와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 ‘좋은데’에 대한 해석이 엄마와 딸들이 서로 달랐다. 


 엄마는 아이로 태어나 여자로 길러지고, 엄마로 살다가 이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할머니가 되었다. 가족 안에서 수행해야만 했던 과업에서 벗어나 이제껏 살아온 날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시기인 듯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엄마의 인생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해드리고 싶다. 한편으로는 성공한 인생, 잘 산다는 것에 대해 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이제는 쪼그라져 작아진 엄마의 몸을 꼭 껴안고 속삭일 것이다. 엄마는 한 인간으로서 성심을 다했고, 부모로서 책임감이 있었다고. 나 같은 딸을 낳아 길러주셔서 고맙다고. 엄마의 삶을 지켜보며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고, 자유롭게 키워주신 덕에 해방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고. 그리고 실천과정을 통해 자신을 형성하고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여성은 호주가 될 수 없었던 사회에서 나는, 주어진 사회적 규범과 체제에서 비인간적인 부문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보다 나은 사회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선량한 개인이 겪는 차별-학력, 장애유무, 성별, 출신지역, 경제력 등등-에 근거해서 유지되는 사회제도는 변화되어야 할 것이었다. 변화의 방향은 남녀의 평등, 인간사이의 협동,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 설정해도 좋을 것이었다. 그리고 사회변화를 만드는 일은 정치인이 대리해서 해결해 주거나, 법제도만을 개선해서 되는 일도 아니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일상에서, 일터에서 항상 실천하고 건설하는 것이어야 했다. ‘먹거리로 바꿔가는 세상’이란 행복중심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초기 슬로건은 장바구니(소비)를 든 여성들이 호혜와 연대의 경제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협동조합은 나의 가치관과 지향 그리고 일상을 통일시키는 삶의 현장, 나의 인생의 중심이다.  


 엄마와의 여행은 양육자에게 보내는 감사와 함께, 여자로서 살아온 서로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우정을 나누는 시간이 될 것이다. 코로나 방역이 격상되지 않기를 바라며.

 

안인숙 행복중심생협 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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