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중심생협 연합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이제 닭들의 죽음에 귀 기울일 때

2021-02-03 15:09:01.0 arina0322

 

 대한민국은 현재 1인 1닭 시대를 살고 있다. 월급날이나 돼야 누런 종이봉투에 담긴 통닭 한 마리를 놓고 온 가족이 잔치를 했던 시절을 얘기하면 ‘라떼 꼰대’가 되는 걸까? 하여튼 그 많은 닭들을 아무 생각 없이 먹어치우고 있는 마당에 닭들이 살처분 당한다 한들 누가 관심을 가질 것인가? 

 

 

 무차별한 살처분만이 답일까
 AI(조류 인플루엔자),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인수공통 전염병으로 인간에게도 전염될 수 있으며, 우리가 즐겨먹는 닭, 오리, 그리고 계란의 수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거다. 이걸 막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예방적 살처분’과 ‘무관세 계란수입’이다. 무관세 수입의 문제는 뒤로 하더라도 살처분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AI 발생 농가 반경 3km이내 가금류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적 살처분 한다. 가금류를 안락사 후 매장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마대자루에 5~6마리씩 산 채로 담아서 미리 파놓은 큰 구덩이에 던져 넣고, 흙을 덮어 생매장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다면 무차별한 살처분 정책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산안마을 이야기
 최근 경기도 화성 산안마을에서 작은 반란이 시작되었고, 이는 향후 조류인플루엔자 방역 정책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산안마을은 산란계 3만 7천 마리를 사육하는 친환경 동물복지 농장이다. 산안마을과 1.8km 떨어진 산란계 농장에서 AI가 발생해 예방적 살처분 대상이 되었는데, 경기도에 살처분 명령취소 행정심판을 청구해 지난 1월 25일 농장의 집행정지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사육중인 산란계 간이검사가 음성으로 확인, 이미 잠복기까지(최대3주) 끝난 상황으로 공공복리를 위해 강제적 살처분집행을 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이 없어 살처분 명령은 집행중지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명령중단은 당국의 방역정책 수행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로써 살처분 될 닭들의 운명은 막았지만 닭들이 낳은 계란 60만개는 유통을 못하고 방치된 상태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산안마을 농장은 1984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AI에 걸린 적이 없다. 2014, 2018년 인근 농장에서 AI가 발생했을 때도 문제없었고, 발생지와 800m정도 떨어져 있어 살처분도 면했다. 당시 예방적 살처분 기준은 반경 500m이내였다. 2018년부터 기준이 3km로 확대되어 현재 강제 살처분 명령을 받게 된 것이었다. 3km로 확대된 근거와 타당성도 모른다. 강력한 예방조치를 하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과도하다. 


 그렇다면 산안마을이 이토록 오랜기간 AI로부터 감염되지 않은 원인이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새들은 조류독감에 걸려도 자연 치유되거나 회복력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전파력과 치사율이 높은 건 밀집사육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산안마을은 동물복지농장으로 밀집케이지 사육과 달리 1㎥당 4마리(축산법상 9마리 이하)를 키운다. 쾌적하고 스트레스 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사육환경이 면역력을 높였을 것이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변화하자
 사육환경이나 감염여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살처분 하라는 것은 애지중지 길러온 닭들이나 생산자 모두에게 가혹하고도 과도한 처분이다. 감염으로부터 예방은 살처분이 아니라 감염되지 않도록 하는 사전 정책이다, 현재처럼 밀집사육으로 값싸게 많은 축산물을 먹고자 한다면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때마다 살처분이라는 차마 해서는 안 될 비윤리적 행태가 자행되고, 축산농가의 시름과 땅과 물의 오염이라는 결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이젠 지속가능한 축산정책으로 방향이 전환되어야 한다. 

 

 달걀 한 알 도매가 100원, 닭고기 한 마리 1천원~2천원. 도대체 한 농가에 몇 마리의 닭을 키워야 농민의 생계가 가능할까. 조금 더 비싸게, 조금 더 행복하게 키운 고기와 달걀을, 지금보다 더 적게, 부족한 듯 먹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농가는 무리한 케이지 사육을 포기할 수 있고 정책 변화의 요구도 더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이다. 먹는 소비자도 생산하는 축산농가도 산안마을을 계기로 이 전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더는 시장경제의 논리에만 끌려 다니지 말고 생명을 키워내고 생명을 먹여 살리는 농부로, 그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인정하는 소비자로 역할 해야 한다.
 

강은경  행복중심생협 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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