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중심생협 연합회

생산자 이야기

행복중심 여러분,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9-05-13 09:52:15.0 arina0322

노르마 무가르(Norma Mugar)

 

 안녕하세요 행복중심 조합원 여러분. 저는 30여년간 필리핀의 민중교역을 위해 한 길을 걸어온 노르마라고 합니다. 여러분과는 작년에 필리핀에서 만나는 기쁨을 누렸는데 이제 곧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기대가 됩니다. 오랜기간 식민지로 착취당하고 독재에 시달려온 필리핀 민중들에게 다시 자립할 수 있는 힘은 민중교역이었고 그 가운데서 만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원래 저는 마닐라에서 수녀이자 선생님이었습니다. 16년간 근무하던 중 마르코스[1] 독재시절 원래 하던 업무 이외에 수녀들과 비밀조직을 결성하여 민중들을 위한 운동을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1970년대에 바콜로드로 돌아와 마르코스 독재 하에 힘들어하던 설탕노동자들을 보았습니다. 이후 사탕수수 노동자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업무를 지원하여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수녀로서 일하면서 배운대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도울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군부 독재 시절, 군대에 보복당하던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저는 그나마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로 저는 제 자신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했고, 또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민중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가족들에게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혹여 제가 잡히면 무엇을 하는지 밝혀지면 안되니까요. 비사야스 지역의 다양한 섬을 돌아다니며 1986년까지 민중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 후, 일본으로 가서 JCNC[2]와의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지하에서 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은 지속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직접 돌아다니며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ALTERTRADE[3]’의 컨셉을 잡고, 생산자를 조직하고, 조직하는 훈련 등을 구상했습니다. 저는 1992년에 구금되었고 석방된 후 1994년부터 ALTERTRADE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스코바도는 일본과 시작하긴 했지만 유럽의 파트너들과 연결되며 성장했고, 발랑곤바나나는 일본과 확장되었습니다.

 

 공정무역이라는 시스템은 무역이 왜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산자들이 무역을 전개하며 사업을 하는 노하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공정무역과 민중교역의 핵심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민중교역은 공정무역보다 더 중요한 가치입니다. 공정무역은 무역이라는 시스템을 공정하게 만드는 것, 즉 무역 시스템과 상품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민중교역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민중교역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독립심을 존중하면서도 서로를 엮어내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민중교역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사람들은 대개 ‘상품’을 떠올릴 것입니다. 민중교역을 통해 마스코바도와 발랑곤바나나를 교역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또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생산자들은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요? 물론 저희도 더 좋은 품질의 물품을 생산해낼 수 있도록 생산자들과 열심히 공조해야 합니다. 민중교역은 무역이라는 시스템과 소생산자, 그리고 소비자라는 사람들을 엮어내는 작업입니다.

 

 

 물론 이 일은 쉽지 않습니다. 너무 힘들고 고된 길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얻게 된 관계의 값은 이루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합니다. 이 운동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조합원들과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너무 기쁜 일입니다. 여러분이 우리에게 중요하듯 우리도 여러분에게 중요한 존재임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행복중심 여러분들이 네그로스에 방문하셨기에 특히 더 소중하지만, 저는 여러분들이 이미 민중교역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계속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분들과 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랍니다.

 

 민중교역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운동이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특정 지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생산자들에게는 그들이 직접 계획하고 재배한 생산물을 직접 수출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구조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또 자신들의 의견을 직접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활양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삼시 세 끼 먹을 수 있고, 생활에 필요한 기본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비자 분들께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30년 동안 소비자 분들을 만나오면서 여러분들의 생활양식도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민중교역 물품도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라 믿습니다. 민중교역과 연대하기 위해 발랑곤바나나 같은 우리 물품을 지속적으로 소비하기 위한 노력을 해주시니까요. 또 반대로 필리핀의 문화를 이해하고 맞춰주실 때도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한 시도가 우리의 삶을 바꿔나간다고 믿습니다.

 

 제가 꿈꾸는 세상은 자비와 친절, 존경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식탁에 항상 먹을 것이 있는 세상입니다. 가끔 ‘왜 많이 가진 자들이 덜 가진 자들과 나누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개발국과 개발국의 차이가 자본 때문에 발생했다면 그 자본은 정말 그들의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행복중심 여러분, 다시 만나게 되어 정말 ‘행복’합니다. 처음의 만남은 중요하지만 부족한 것도 많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 대해 더 알고 싶습니다.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우리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5월, 한국 공정무역의 달을 맞아 다시 여러분을 만나러 갑니다. 그래서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행복중심 조합원 여러분께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드나요? 서로의 만남을 통해 그 답을 발견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17~1989) : 65년 대통령이 당선되고 경제개혁의 성과를 통해 인기를 얻었지만 이내 경제가 어려워지자 72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독재를 시작한다. 부정선거와 부정부패를 일삼다가 결국 시민들의 저항으로 86년 사퇴 후 하와이로 망명한다.

[2] Japan Committee for Negros Campaign(일본 네그로스 캠페인 위원회), 그린코프생협 등이 조직하여 필리핀의 심각한 기아를 돕기 위해 바나나를 수입하고 주민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3] ATC(알터트레이드사), 87년 설립되어 필리핀의 민중교역을 시작하였다. 재단(ATPF)과 사업법인(ATPI)으로 나눠져있고 노르마 선생님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