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중심생협 연합회

생산자 이야기

눈 앞의 욕심을 좇지 않아야 진짜 농사꾼이지

2019-06-03 13:11:01.0 arina0322

"눈 앞의 욕심을 좇지 않아야 진짜 농사꾼이지”  -  소부리영농조합 정낙현 생산자

 

 “남들은 수박농사가 편하다고 하는데 사실 이건 어려워.” 소부리영농조합 정낙현 생산자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여러번 수확해야 하는 다른 과일에 비해 수박은 한 번 수확하면 끝인 것처럼 보여서 다른 과일 농부들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찬찬히 그 과정을 듣다보니 어렵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생산자가 현재 가꾸는 수박 하우스는 열 동. 출하시기를 조금씩 달리 하며 재배 하는 중이다. 아직은 봄의 기운이 남아있는 5월이었는데도 하우스 안은 푹푹 찐다. 작업하다보면 40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하우스 안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사진을 찍다보니 얼굴에 땀이 줄줄 흘렀다.


 

경험과 부지런함으로 만드는 수박

 
 한 통의 잘 익은 수박을 얻으려면 12월 중순 파종해서 1월 초에 접목을 하고 1월 하순에 정식을 한다. 접목은 박이나 호박의 뿌리에 수박의 줄기를 붙이는 것이다. 그래야 병충해에 강하고 뿌리가 튼튼하다. 접목 후 정식까지 20-25일 기간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온도관리가 정말 중요해 하루에도 몇 번씩 3~4겹으로 덮어놓은 터널을 열고 닫는다. 지금은 소부리 1등 수박을 자부하는 베테랑인 정낙현 생산자도 처음 수박농사를 지을 땐 실패도 많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낸 우직함과 베짱이 지금의 수박을 있게 하지 않았을까. 

 

 정식을 하고 꽃이 필 때 까지 40일 정도 걸린다. 수박은 줄기가 뻗어나가며 잎이 나고 마디가 생긴다. 그래서 수박의 성장은 잎이 나는 마디수로 계산하는데 1차로 7-9마디가 되었을 때  꽃이 피고 2차는 12마디 때, 3차는 15-16마디 때 꽃이 핀다. 생산자는 3차까지 꽃을 모두 제거하고 네 번째로 20마디 이상이 되었을 때 피는 꽃으로 수정을 한다. 일찍 핀 꽃으로 수정을 하면 처음엔 성장이 빨라 보이지만 점점 더뎌져 크고 좋은 수박이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생산자는 빠르고 쉽게 수박을 얻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기다린다. 수박의 품질은 곧 생산자의 자부심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벌이 자연수정하는 수박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제아무리 인공수정을 시켜도 벌이 하는 것보다 꼼꼼하게 일을 할 수가 없다. 대신 벌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수정이 어려워진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최대한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농사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정낙현 생산자는 소부리영농조합에서도 부지런함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지금도 새벽 4시에 나와 농가를 돌보고 저녁 8시 넘어야 집에 들어간다고 한다. 좋은 품질의 수박을 생산하는 노하우로 생산자는 온도관리를 중요하게 꼽았다. 인터뷰를 진행할 때 시간이 오후 두 시 정도였는데 직접 잎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셨다. “지금 제일 더운 시간에도 잎이 생생한 거 봐요. 이렇게 온도와 수분관리를 하는 게 노하우에요. 잎이 시들었다는 건 이미 뿌리가 말랐다는 거거든요. 농사꾼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요.” 눈이 와도 쉬는 날이 없고 하루라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온도가 낮을 땐 온도에 맞게 세 번에 걸쳐서 터널을 열고 또 닫아야 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좋은 수박을 생산할 수 없다. 

 


 

농사는 욕심을 부리면 안 돼


 힘든 친환경 농사의 길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부여에서 두 농가가 친환경 농사를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언젠가 저렇게 해야겠다 싶었어요. 식구들이 먹는다고 생각하면 친환경을 할 수 밖에 없잖아요.” 생산자는 자기의 철학을 담담히 열어놓았다. “돈을 보고 농사를 지으면 안 되요. 내 가족이 먹는다 생각하면 약을 칠 수가 없는거니까. 그리고 농사는 마음을 비워야 해요. 올 해 잘 못 지으면 내년에 잘 지으면 되요.” 결국 농사는 당장의 이익에 욕심을 가지면 안된다는 말이 와 닿았다. 그게 비단 농사 뿐은 아닐텐데. 힘들고 급해서 멀리 보지 못하고 눈 앞에 놓인 것에만 전전긍긍했던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힘든 시간들도 이겨내고


 오래 전 관행 농사를 지을 때 받은 박씨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서 수박 묘종이 거의 다 죽어버린 적이 있다고 한다. 결국 수박을 못하게 되어 토마토를 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직도 날짜를 기억한다고 하셨다. 3월 22일 일요일. 일을 좀 줄여보려고 토마토 터널을 벗겨놓았는데 하필 그날 저녁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했다. 식구들과 밤까지 애써 다시 씌우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다 얼어버렸다. 그렇게 토마토 농사 3년을 실패하고 그만두니 4년째 토마토 값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수박을 시작했다. 

 


 

올곧은 철학이 만들어낸 단 맛


 정낙현 생산자의 수박은 정말 달고 맛있었다. 내가 생산한 물건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자부심, 그리고 ‘과감하게 제거할 건 제거하고 버릴 건 버릴 줄 알아야 농사꾼’이라는 철학이 만든 최고의 수박이다. 어떤 사람들은 제대로 크지 못한 것들도 당장 버는 돈 때문에 시장에 내놓는다. 하지만 정품에 비해 맛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수박 농사를 짓기 전, 오이 농사를 할 때도 남들은 30박스를 보낼 때 본인은 20박스 미만을 보냈다고 한다. 정말 좋은 것만 골라서 보내니 수량은 줄었다. 하지만 품질을 인정받아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소부리영농조합에서 생산되는 수박은 친환경 거름과 함께 녹비작물을 심어 땅을 건강하게 만든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약을 쓰지 않으면 그만큼 땀과 노력이 더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렇게 힘들여 뿌리와 잎을 싱싱하게 만들면 당도는 자연히 따라온다고 생산자는 자신있게 말한다. 

 

서로 배려하면서 기쁨을 나누어가는 것


 사실 아무리 정성스레 출하를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아쉬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조합원의 배려를 부탁하셨다. “수박 한 통을 올곧이 맛있게 만들기 위한 생산자의 노고를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맛있고 감사하게 먹어주시면 그 마음이 생산자에게도 전해져 힘이 되요. 그러면 당연히 더 좋은 수박을 키워낼 수 있지요.” 일 년 농사의 끝에 수확하는 수박을 보는 것이 가장 기쁜 순간이라고 말하는 생산자의 얼굴에는 활짝 웃음이 피었다.
 

글  김산
사진  김산,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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