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중심생협 연합회

생산자 이야기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모두어 가는 길

2019-04-01 16:47:40.0 puritan84

 

‘땅 끝’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해남. 먼 거리를 가야 했기에 아침 일찍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생산자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 다. 서울살이에 익숙해 지다보니 잊고 있었던 것, 사실 모든 것은 누군가의 수고와 정성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힘든 농부의 삶을 알면서도 걸어가는 이유
최복자, 김성래 부부 생산자는 1996년부터 해남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같이 모두어 간다는 의미에서 ‘모듬살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처음부터 친환경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고 내려왔다는 생산자는 지금껏 그 다짐을 지켜가며 유기농 쑥과 배추 등을 키워 전남도친환경농업대상 우수상을 수여받았다. 그 외에도 양파, 잎마늘, 쌈배추, 시금치, 머위 등 여러 가지를 골고루 생산하고 있다. 인기 생활재인 두륜산야초와 김장배추, 김장채소도 모듬살이의 생활재다.


가난한 농부의 딸이었던 최복자 생산자는 힘든 농부의 삶을 알면서 왜 그 길을 가려고 하느냐는 질문과 만류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풀무농업학교에서 생명과 농사를 귀히 여기는 것을 배우며 언젠가 농사를 지어야겠다 결심했다. 서울 정농생협 에서 일했던 최복자 생산자는 비슷하게 한살림 실무자로 일하던 남편 김성래 생산자를 만나 결혼하고 이듬해 해남으로 내려왔다. “농사는 반복되는 일이지만 그 느낌이 해마다 달라요. 싹이 트는 모습도 예쁘고, 풀을 매주면 잘 자라겠다 싶어서 좋고. 여튼 저는 농사가 즐거워요.” 이야기를 꺼내는 생산자의 얼굴은 해맑았다.

 

 

땅 끝에서부터 봄을 알리는 나물
최복자 생산자의 밭은 언덕 높은 곳에 있었다. 농약이 흘러 들어올까봐 일부러 높은 곳에 밭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쑥을 재배하고 있다는 노지는 냉이와 민들레, 그리고 잡풀들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품을 들여 가꾸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래서 생산자는 쑥을 노지에서 재배하는 게 어려워 하우스에서 재배한다고 설명했다. 함께 찾아간 쑥 하우스에는 향과 푸르름이 가득했다. 비가림 하우스지만 최대한 노지의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통풍도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시금치와 머위는 해남의 바람을 맞으며 크고 있었다. 특히 모듬살이의 시금치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키 큰 개량종이 아닌 재래종이다. 섬초, 포항초, 남해초 등의 시금 치들이 모두 각 지역에서 자생하는 재래종의 종류라고 한다. 이런 재래종은 개량종에 비해 크기는 조금 작을지 몰라도 맛과 식감이 훨씬 뛰어나다. 이번 달부터 머위도 공급이 시작된다. 머위는 쌉쌀한 맛과 향만큼이나 영양소가 풍부하고 폴리페놀이라는 성분이 많이 들어있어 항암효과도 크다. 해남의 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자란 머위가 참 기대된다.

 


아픔과 기쁨도 포개어 놓고
“사실 우리 막내 딸, 아들에겐 미안해요. 돌도 안되서 유치원에 보내고 그랬거든요.”
길을 걷다 덤덤하게 말을 꺼내놓았다.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면서도 농사일을 쉬지 않았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에 부쳤을까. 인터뷰 내내 밝고 씩씩한 모습이었던 최복자 생산자에게 조심스레 힘들었던 기억을 물었다. “딸이 백일이 조금 넘었을 때, 계약 생산 하기로 한 고구마를 땅 위로 빼주는 작업을 해야 했어요. 안하면 녹아서 죽거든요. 동네 사람들이 도와주기로 했는데 정작 당일엔 자기 일들이 바빠 아무도 못 온거 에요. 하는 수 없이 갓난아기를 목욕대야에 눕히고 그걸 허리춤에 매고 밭일을 시작 했죠. 하필 그날따라 비가 너무 많이 왔는데 한참 일하다 보니까 대야에 물이 차 있는 거에요. 속상하고 아기한테 너무 미안해서 울었죠.” 이제는 장성한 자녀들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감정들은 마음속 켜켜이 쌓여있다.


그래도 힘든 농사를 계속 이어나간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본인이 농사를 즐거워 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런 생산자의 노고를 잊지 않고 감사하다며 편지와 선물을 보내준 조합원들의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거저 드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 챙겨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도 들고, 아직도 이런 따뜻 함이 살아있구나 했죠.” 일반 마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이런 끈끈한 관계가 생협이 기에 가능했다.

 


생산자의 꿈, 조합의 자부심
이제 농부의 삶으로 23년차를 넘긴 어엿한 베테랑 농사꾼이지만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다는 최복자 생산자. 비료배합과 양을 이론적으로 배워 적용해보니 확실히 수확량이 늘었다. 그래서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들을 이론에 녹여 설득력 있게 전달해 주기 위해 노력중이다. “갓 귀농해서 농사를 지으러 오는 분들이 종종 실패하는 것을볼 때가 있었어요. 이제는 그런 분들을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부모를 따라 농사를 이어가기로 결심한 둘째 아들을 제대로 된 농사꾼으로 키워내는 것도 그에게 남은 과제다. 그래도 요즘 세상에 아들이 자기를 보고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했으니 이정도면 성공한 것 아니냐며 뿌듯해 하는 모습이 얼굴에 가득했다.


바쁜 일을 마치고 온 김성래 생산자는 한사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했다. 거기엔 하우스가 아니라 맨 땅에 주먹같이 촘촘히 심겨진 자줏빛 상추들이 줄지어 있었다. 작년 겨울 심겨져 해남의 바람과 서리, 눈과 비를 견디며 자라고 있는 상추는 무려 일곱 달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자라 조합원의 밥상 위로 올라간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먹는 상추는 하우스에서 한 달 만에 재배된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차이가 아닐수 없다.


당연히 일반적인 하우스 재배에 비하면 훨씬 더디고 비용과 노고도 많이 든다. 하지만 자연과 함께 자란 노지 상추는 맛과 영양이 뛰어나고 급하게 키운 상추에서는볼 수 없는 하얀 진액을 품고 있다. 겉은 비슷해도 몸에 주는 영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런 상추도 있다는 것을 조합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게 이유에요. 상추뿐 아니라 케일이나 다른 작물도 앞으로 이렇게 길러서 공급해 보려고 해요.” 생산자의 자부심은 곧 함께 이용하는 조합원의 자랑거리가 된다.


“우리 생활재를 애용해 주셔서 감사해요. 간혹 열심히 농사지어 꼼꼼히 선별을 해도 시들거나 벌레 먹은 것들이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우리의 마음과 수고로움을한 번만 더 생각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부탁드려요. 개인적으로 머윗대, 머위순 같은 잊혀져가는 농산물들을 기억하고 사용하는 방법들도 알려갔으면 좋겠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따뜻한 환대와 더불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 그의 마지막 말처럼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우리 생활재를 사랑하고 함께 모두어 가기를 바란다.


글·사진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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