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중심생협 연합회

여성과 환경

지구에게는 백신이 없습니다

2021-03-05 14:56:52.0 arina0322

지구에게는 백신이 없습니다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이제 토를 다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지난 해 우리가 겪은 54일간의 장마와 지금도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기후위기가 저 멀리 있는 북극곰이나 남태평양 섬나라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에 국회는 기후위기 비상 대응 결의안을 채택했고,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을 표방하며 한국판 ‘그린뉴딜’을 말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기후위기가 같은 뿌리에서 온 것이니 해결 방안도 같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아지고 있다. 

 

 기후변화의 티핑포인트가 두렵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말과 행동이 제대로 들어맞는지에 있다. 탄소중립을 한다면서 정부의 그린뉴딜 사업에는 전기차 지원 확대에 가장 큰 예산이 투여된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줄이는 방안이 없으니 오히려 전력 수요가 당분간 더 늘어나고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도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가덕도 신공항을 예비타당성 조사도 하지 않고 추진하는 입법을 논의 중이라니 앞뒤가 따로 노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넌지시 알려주지만, 정부의 관심은 생산과 소비를 다시 늘려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러 온 팬데믹과 기후위기 심각성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는 변이를 일으키고 확산하며 각국의 대응에 따라 변동 폭을 갖지만 지구 온난화와 같은 어떤 ‘티핑 포인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에너지가 평형 상태의 문턱값을 넘어서서 온도가 상승하는 것이 티핑 포인트다. 그것을 넘어서면 1.5도만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몇 도가 상승할지 그리고 인류와 생태계가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과학자들도 분명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돌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구에게는 백신이나 치료제 같은 것을 쓸 수 없다. 기후위기 앞에서는 집단 격리나 자가 격리라는 게 존재할 수 없다. 

 

 ‘더 나은 복구’로 나아갈 수 있는 길
 어쨌든 코로나-19 영향으로 전 세계와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이 작년과 올해 사이에 6-7% 정도 줄었다고 한다. 한국이 IMF 구제 금융의 타격을 받은 1998년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14% 줄어들었다. 2050년 배출 제로로 가려면 단순히 계산할 때 코로나 상황이 이렇게 계속되거나 1998년 경제 위축의 절반 정도가 앞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지금의 온실가스 배출 감소는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적어도, 어떤 산업 활동과 이동 활동이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다른 한편 우리가 필수 노동이라 새로 부르게 된 많은 돌봄 노동들도 새로이 떠올랐다. 이러한 인식을 살려나가는 게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더 나은 복구(recover better)’다. 안토니오 귀테레스 유엔 사무총장은 감염병과 기후 파괴의 실존적 위협에 동시에 맞서야 할 뿐 아니라, 감염병 복구가 “우리 세계를 더 좋게 재건 할 수 있는 드물고도 짧은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고 호소했다. 미국의 ‘그린 뉴딜’과 유럽연합의 ‘그린 딜’은 그러한 가능성에 주목하는 정책 패키지가 될 잠재력이 있다. 기후변화는 매우 실제적이고 합리적이며 긴급한 급진적 대안, 즉 반자본주의 또는 탈자본주의적 대안들을 논의할 예외적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전면적 체제 전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자본축적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나오미 클라인’은 최근 코로나 위기가 필수적인 에너지 전환과 경제 전환이 아니라 오히려 재난을 이윤 기회로 삼는 ‘재난 자본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고 염려한다. 


 결국 코로나-19 위기와 기후위기 대응은 경제 규모와 생산의 축소와 전 사회적 조절을 수반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그린뉴딜이나 다른 전략을 들고 나와도 의미가 없다.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국제적으로 성과를 자랑하기에 바쁘지만, 정부와 사회가 환경과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거의 바뀐 게 없어 보인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위기의 극복이 ‘재난 자본주의’를 통한 구체제의 복구 또는 더 나쁜 체제로 갈 것인지, 또는 코로나 위기와 병행하는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받아들이고 질서 있는 경제와 사회의 재조직을 실현할 것인지의 분기점 앞에 있다. 즉 코로나 위기를 통해 기후위기를 대비하고, 또 코로나 위기를 이겨내면서 기후위기를 이겨내는 토론과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탈(脫)성장을 향한 한걸음
 미래를 여는 열쇠를 얻으려면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그저 “자본주의가 문제다”라는 말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며, 무엇을 어떻게 바꾸자는 주장과 바람이 분명해야 한다. 주요 원칙과 방향에는 ‘탈성장’의 전면화 또는 경제의 질서 있는 후퇴와 축소를 통한 ‘관리된 탈성장’이 분명하게 포함되어야 한다. 경제 생활과 에너지 소비 및 오염 배출 사이의 절대적이고 충분한 탈동조화(decoupling)가 요구되며, 뿐만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총량 자체도 줄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GDP 증가로 표현되는 경제성장이 갖는 의미를 상대화하고 다른 질적 지표들을 주류화해야 한다. 다양한 사회 안녕과 번영을 개념화하고, 연대와 돌봄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폭넓게 인정되어야 한다. 

 

 다음 한걸음은 무엇일까? 돌봄이 인정받고 존중받으려면 경제적 환경도 바뀌어야 한다. 급진적 노동시간 단축 및 이와 연동되는 기본소득 보장을 현실의 요구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제조업, 농업, 에너지산업들도 목표와 비중을 시간을 두고 전환하고, 이에 따라 노동자, 농민, 협동조합의 비중과 존재 양태를 전환해야 할 것이다. 참여적 계획경제, 자립과 살림의 확대와 일상화, 연대와 민주주의 모두가 결합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할 다양한 운동과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생산과 더 많은 소비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런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1.5도라는 숫자만 보고 있어서는 우리의 시야는 더욱 좁아질 수 있다. 화석연료만 문제가 아니라 과도한 생산과 소비를 부추기며, 나누는 삶을 막아온 체제가 문제다. 그러나 그 체제를 비난하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그 체제를 뛰어넘거나 허물 방법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행해야 한다. 1.5도를 지키는 방법 뿐 아니라 기후위기의 시대를 함께 맞고 살아가는 더 큰 논의와 궁리를 함께 해야 한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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